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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방글라 전 총리 사형 선고, 인도 도피 중…국제사회 충격

by mynote7230 2025.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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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 전 총리 사형선고

 

2025년 11월 17일, 방글라데시 다카 법원은 전 총리 셰이크 하시나(Sheikh Hasina) 에게 ‘시위 유혈진압 지시’ 혐의로 사형을 선고했다.
이 소식은 전 세계 언론을 통해 속보로 전해지며 국제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시나 전 총리는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무력 진압을 명령하고, 잔혹 행위를 방치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BBC 보도에 따르면, 법원은 “반인도적 범죄의 모든 요건이 충족됐다”며 사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1,400명 사망한 유혈사태… 국제사회 ‘충격’

이번 사건의 발단은 2024년 7월,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공직 할당에 반발한 대학생들의 대규모 시위였다.
당시 하시나 정부는 시위대 해산을 명령하며 군과 경찰을 동원한 강경 진압을 펼쳤고,
이 과정에서 1,4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유엔(UN) 은 추산했다.

유혈사태 이후 국제사회는 방글라데시 정부의 폭력 진압을 강하게 비판했으며,
하시나 총리는 그해 8월 인도로 도피했다. 이후 그녀는 국제 사회와 국내 언론으로부터 “독재의 상징”으로 지목받았다.


반인도적 범죄

인도 도피 후 궐석 재판… 사형 선고까지

하시나 전 총리는 도피 후에도 정치적 입장을 고수하며 “모든 혐의는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카 법원은 그녀의 부재 중에도 재판을 진행(궐석 재판) 했고, 검찰의 사형 구형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녀는 판결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이번 재판은 정치적 음모이며, 과도정부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
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방글라데시 과도정부는 “정의 실현의 결과”라며 강경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인도 송환 가능성은?

방글라데시 정부는 현재 인도에 범죄인 인도 조약에 따라 하시나 전 총리의 송환을 공식 요청할 계획이다.
하지만 인도는 이미 한 차례 이 요청을 거부한 바 있다.

이는 하시나가 오랜 기간 인도 정부와 밀접한 외교·경제 협력 관계를 유지해온 영향으로 분석된다.
양국 간 정치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실제 송환이 이루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아들과 여당의 입장

하시나 전 총리의 아들 사지브 와제드(Sajib Wazed) 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는 상고하지 않겠다.”
라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현 과도정부 체제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는 발언으로,
방글라데시 정국의 혼란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예고했다.


국제정의 실현의 상징적 사건

반인도적 범죄, 그리고 정의의 무게

이번 사건은 단순한 정치 재판이 아니다.
국가 최고 지도자가 자국민을 향해 무력을 사용한 결과가 사법적으로 단죄된 사례이기 때문이다.

법원은 하시나의 행위를 “살해 지시, 유혈 진압 조장, 잔혹 행위 방치”로 규정했으며,
이는 국제법상 ‘반인도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 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국제 인권 단체들은 이번 판결을 두고
“인권 유린에 대한 경고이자, 정치 지도자 책임의 새로운 이정표”라고 평가했다.


방글라데시의 미래는 어디로 향할까

이번 사형 선고는 방글라데시 정치의 불안정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과도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국민의 분열은 여전하며,
한편으로는 하시나를 “독재자”로 비판하는 목소리와,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 발전의 주역”으로 보는 시각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지금 정의와 복수, 민주주의와 통제 사이의 갈림길에 서 있다.


국제사회의 시선 — 인권 vs. 주권

국제사회는 이번 판결을 두고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유럽연합(EU)과 유엔 인권이사회는 “사법적 정의 실현”이라 평가했지만,
일부 인권단체는 “정치적 보복의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인도와의 관계, 그리고 방글라데시 내부의 민주화 요구가 맞물리며
향후 남아시아 지역의 외교적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크다.


결론: 권력의 그림자와 정의의 칼날

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의 사형 선고는
한 국가의 정치가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정의가 얼마나 늦게 찾아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한 지도자의 몰락’이 아니라,
방글라데시 민주주의의 시험대이자, 국제 정의 실현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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