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이 폭발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AI 서비스가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특히 챗봇, 음성 인식 서비스, 얼굴 인식 기반의 출입 통제 시스템, 스마트 시티 관리 기술 등은 모두 AI의 능력을 실생활에 적용한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발전 이면에는 심각한 문제가 숨어 있다. 바로 AI가 수집하고 처리하는 개인정보가 현행 국내 개인정보보호법과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개인정보보호법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엄격한 수준에 속하며, 수집 및 처리, 보관, 파기, 제3자 제공까지 상세하게 규제하고 있다. 이처럼 엄격한 법적 테두리 안에서 AI 서비스가 어떤 식으로 법과 부딪히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충돌을 해결하기 위한 기술적 및 법률적 해석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본 글에서는 AI 서비스와 개인정보보호법 간의 구체적인 충돌 사례를 중심으로 문제의 본질을 분석하고, 법률적 해석과 기술적 대응 방안까지 포괄적으로 고찰해 보고자 한다.
AI 챗봇 서비스와 민감정보 처리의 충돌 사례
2023년 국내에서 실제로 발생한 사례 중 하나는 모 보험사의 AI 챗봇 서비스가 고객의 건강 정보를 수집하면서 발생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건이다. 이 AI 챗봇은 고객 응대를 자동화하는 도구로 활용되었으며, 상담 도중 고객이 병력이나 치료 이력 등을 언급하면 이를 자동으로 텍스트화하고, 내부 CRM 시스템에 저장하는 구조였다. 문제는 고객이 자신의 민감 정보를 AI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사전 동의 없이 수집된 민감정보가 저장되고 있었고, 이 저장 방식이 개인정보보호법 제23조(민감정보의 처리 제한)에 저촉된다는 점이다.
법률적으로 민감정보는 건강, 성생활, 정치 성향, 종교 등 개인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보로 분류되며, 이를 수집하거나 활용하기 위해서는 명시적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AI 챗봇은 고객의 질문에 실시간으로 대응하기 위해 비정형 데이터 처리 방식을 채택하고 있고, 사전에 예측할 수 없는 정보 흐름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사전 동의 절차를 적용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기술적으로는 자연어 처리(NLP) 기반의 AI 모델이 자동으로 정보를 파악하고 분류하는 과정을 통해 민감정보를 식별해야 하는데, 이 과정은 아직 100% 정확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따라서 기술적으로 불완전한 민감정보 식별 기능이 법적 책임으로 전가되는 위험이 존재하며, 이로 인해 AI 서비스 제공자는 새로운 유형의 법적 리스크에 노출되고 있다.
얼굴 인식 기반 출입 통제 시스템과 생체정보 저장 문제
AI가 활용되는 또 다른 분야는 바로 출입 통제 시스템이다. 최근 국내 대형 사무실, 공동주택, 기업 연구소 등에서는 얼굴 인식 시스템을 통한 출입 관리 방식이 확산하고 있다. 이 기술은 보안성과 편의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지만, 개인정보보호법과는 정면으로 충돌한다.
특히 얼굴 인식 시스템이 사용하는 얼굴 이미지 데이터는 생체정보로 분류되며, 민감정보보다도 더욱 엄격하게 보호되어야 할 개인정보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러한 시스템을 설치하면서 이용자에게 명확한 동의 없이 데이터가 수집되고 장기적으로 보관되는 사례가 많다. 실제로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는 입주민의 동의 없이 얼굴 정보를 수집해 입주자 대표 회의가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시정 조치를 받은 바 있다.
법률적으로는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및 제16조에 따라, 개인정보 수집 시에는 명확한 목적과 범위를 제시해야 하며, 불필요한 정보의 수집은 금지된다. 그러나 AI 기반 시스템에서는 얼굴 데이터를 단순히 식별용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패턴 분석, 행동 분석, 감정 추론 등 부가적 활용을 위한 학습 데이터로 재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본래의 수집 목적을 벗어난 '목적 외 이용' 문제가 발생하고, 이는 명백한 위법 행위로 간주한다.
기술적 측면에서는 생체정보를 비식별화하거나 해시 처리하는 방법으로 저장 방식을 변경하려는 시도도 있지만, 얼굴 인식의 경우 비식별화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따라서 출입 통제의 편의성보다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은 위험 기술로 분류될 수 있다.
생성형 AI 서비스와 무단 데이터 학습 논란
최근 가장 뜨거운 논쟁이 되고 있는 것은 바로 생성형 AI(Generative AI)의 데이터 학습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인정보 문제이다. 많은 생성형 AI 모델은 웹에 공개된 데이터를 크롤링하거나, 클라이언트로부터 업로드된 텍스트, 이미지, 음성 데이터를 학습용으로 사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개인정보가 포함된 데이터를 필터링 없이 그대로 수집하는 경우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국내 중소기업이 도입한 오픈소스 기반의 생성형 AI 서비스가 사내 회의록과 고객 피드백 데이터를 학습에 활용하면서 고객 이름, 이메일, 전화번호 등 수천 건의 개인정보가 외부로 전송되었다는 사실이 발견된 사건이 있다. 해당 기업은 자체 서버가 아닌 외부 API를 통해 AI 학습을 진행했으며, 그 과정에서 국내법이 아닌 해외의 느슨한 개인정보 규제 기준을 따르고 있었던 것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법률적으로 보면, 개인정보보호법 제17조(제3자 제공의 제한)는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외부로 전송하거나 공유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 특히 해외 이전 시에는 적정성 평가와 보호조치 확인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AI 학습 모델은 데이터가 국경을 넘나들며 작동하는 특성상, 국내법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는 문제가 있다.
기술적으로는 학습 데이터에서 개인정보를 자동으로 식별하고 제거할 수 있는 프라이버시 필터 기술이 개발되고 있지만, 아직 비정형 데이터, 자연어 텍스트, 음성 인식 정보 등에서는 완전한 개인정보 제거가 어려운 수준이다. 특히 생성형 AI는 이미 학습된 정보를 완전히 삭제하기 어려워 '데이터 잊힐 권리'와 충돌하게 되며, 이는 향후 AI 서비스의 법적 책임 구조를 새롭게 설계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AI 서비스의 개선방향
AI 기술은 혁신적인 도구이자 미래 산업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AI 서비스가 개인정보를 수집, 처리, 저장하는 방식은 현행 국내 개인정보보호법과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새로운 법적 쟁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챗봇의 실시간 대화 수집, 얼굴 인식 시스템의 생체정보 저장, 생성형 AI의 무단 학습 데이터 활용은 각각 기술의 진보와 법률의 정합성 사이에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충돌 사례다.
향후에는 AI 서비스 설계 초기 단계부터 법률 전문가와 기술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프라이버시 설계(Privacy by Design)' 접근법이 필수적으로 요구될 것이며, 비식별화 기술, 선택적 동의 시스템, 이용자 권리 강화 방안 등 다층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 특히 AI의 발전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도록 기술의 윤리성과 법의 기준이 정교하게 접목되어야 한다. 이는 단지 기업의 준법 경영 차원을 넘어, 신뢰할 수 있는 AI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AI국내윤리.규제법가이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방자치단체의 AI윤리 가이드라인 현황 및 한계 (1) | 2025.07.17 |
---|---|
한국형 AI 윤리 기준 vs EU AI Act 비교 분석 (0) | 2025.07.15 |
국내 AI 윤리 자율점검표 도입 현황과 문제점 분석 (0) | 2025.07.14 |
아동 대상 AI 챗봇의 윤리적 문제와 규제 미비 사례 (0) | 2025.07.13 |
AI 학습데이터 규제 사각지대, 한국은 얼마나 허술한가 (0) | 2025.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