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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법제화, 왜 국회에서 계속 미뤄지는가?

mynote7230 2025. 6. 26. 15:30

인공지능(AI)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산업 현장과 일상생활 속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고 있다. 자율주행차가 도로 위를 달리고, 생성형 AI가 글을 쓰며, 챗봇이 의료 상담을 대신하는 시대가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AI 기술의 확산 속도에 비해, 법과 제도는 현저히 느린 움직임을 보인다. 특히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AI 관련 법안이 매년 발의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통과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

AI 법제화 국회에서 미뤄지는 이유

 

AI가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그에 따른 법적 책임과 윤리적 기준을 명확히 하는 작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하지만 국회는 여전히 ‘심의 중’, ‘계류 중’, ‘조정 중’이라는 명목 하에 법제화를 유보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대한민국 국회에서 AI 법제화가 왜 반복적으로 미뤄지는지를 정치, 산업, 사회적 맥락에서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우리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탐색해본다.

국회 입법 지연의 근본 원인: 기술 이해 부족과 정치적 계산

AI 법제화가 국회에서 계속 미뤄지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정책 입안자들의 기술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국회의원 대부분은 법률, 행정, 인문 사회 분야 출신으로, 실제 AI 기술의 구조나 위험성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AI 관련 법안을 심사할 때, 기술적 쟁점이 나오면 논의가 중단되거나, 추가 자료 요청으로 시간이 지연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한다.

또한, AI 관련 입법은 이해관계자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점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스타트업은 규제 완화를, 대기업은 기술 보호를, 시민 단체는 윤리성과 공정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다양한 요구를 모두 반영한 법안을 만들기란 현실적으로 어렵고, 결국 국회는 정치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입법을 무기한 연기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정치적인 계산도 한몫한다. 총선을 앞두거나 지지율이 중요한 시기에는 기술 정책보다 단기적인 표심에 영향을 주는 이슈가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AI 입법은 단기적 성과를 드러내기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에, 의원 입장에서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가 AI 법제화의 지연을 낳고 있다.

반복되는 유사 법안 발의와 계류: 실질적 실행력 부족

대한민국 국회는 AI 관련 법안을 여러 차례 발의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인공지능 기본법’, ‘디지털 윤리법’, ‘AI 이용자 권리보장법’ 등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계류되거나 상임위 통과 후 본회의까지 가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사례가 많았다. 이 과정에서 법안 내용도 대부분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원칙 선언형 조항이 많고, 실질적인 규제나 권한 구조가 모호하게 설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한 법안에서는 “인공지능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과 절차를 통해 평가될 것인지는 담고 있지 않았다. 법안이 상징적인 선언에 그치면, 실제 사회에서 AI로 인한 문제 발생 시 법적 대응이 불가능하게 된다. 이처럼 실행력이 결여된 법안이 반복적으로 발의되고 있다는 점이 입법 지연을 초래하는 또 다른 원인이다.

또한 정부 부처 간의 관할 권한 다툼도 입법을 어렵게 만든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 여러 부처가 AI와 관련된 정책을 관할하고 있으며, 법안 내용에 따라 주도권을 가지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 과정에서 부처 간 의견 충돌로 인해 법안 조율이 지연되고, 결국 입법 일정 자체가 뒤로 밀리는 결과를 낳는다.

산업계의 로비와 규제 반발: 과잉규제에 대한 두려움

AI 법제화가 미뤄지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산업계의 조직적인 반대 때문이다. 특히 대형 IT 기업이나 AI 설루션 기업들은 정부가 법으로 기술 개발을 제한하거나 평가 기준을 명확히 설정할 경우 혁신이 저해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들은 법안 논의가 본격화될 때마다 로비를 통해 규제 완화 방향을 유도하거나, 아예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는 전략을 취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생성형 AI에 대한 법적 책임 조항이 논의될 때, 일부 기업은 “해당 기술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어 법으로 고정된 틀을 적용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라는 입장을 제시한다. 물론 이 주장에도 일리가 있지만, 그 이면에는 법적 책임 회피와 위험 관리의 목적도 존재한다. AI 기술이 오남용되거나 편향된 결과를 낳았을 때, 명확한 책임소재가 없으면 결국 피해는 국민이 떠안게 되는 구조가 된다.

신생기업 계통은 또 다른 이유로 법제화에 신중한 입장이다. 자본력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 AI 기업들은 새로운 법이 생기면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비용과 시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규제를 최소화해달라는 요청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산업계의 입장차와 로비 활동은 국회가 중립적인 입법을 하는 데 큰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 부재와 시민 인식의 간극

AI 법제화의 또 다른 걸림돌은 사회적 합의의 부재다. 법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기술 전문가, 법률가, 시민단체, 일반 국민 등 다양한 계층의 의견을 수렴해야 하지만, 아직 대한민국에서는 AI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이해 수준이 일관되지 않는다.

일반 국민은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위험이 있는지 명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AI가 내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막연한 불안은 있지만, 법적으로 어떤 장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낮다. 이런 상황에서는 법제화를 추진해도 시민들의 지지나 참여를 기대하기 어렵고, 결국 입법 동력도 떨어진다.

또한 윤리적 기준이나 개인정보 활용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아직은 단편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예를 들어, AI가 사용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광고를 추천할 때,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를 두고 명확한 사회적 경계가 설정되지 않은 상태다.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지 않으면, 법으로 이를 규정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국회는 이런 현실을 이유로 법제화 추진을 미루는 것이다.

해결 방안과 앞으로의 방향: 느려도 멈추면 안 된다

AI 법제화는 늦어도 반드시 필요하다. 기술의 진화는 멈추지 않기 때문에, 법과 제도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안전망을 형성하는 수준에서는 작동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첫 번째 조치는 정치권의 인식 전환이다. AI를 단순한 기술 이슈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시민 권리의 문제로 인식하고 우선순위를 재조정해야 한다.

두 번째로는 정부 차원의 ‘AI 법제화 지휘본부’가 필요하다. 여러 부처가 각자 관할하는 현재의 구조로는 통합적이고 일관된 입법이 어렵기 때문에, AI 관련 법안을 총괄하는 전담 기구를 구성하고, 부처 간 이견 조율을 위한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

세 번째는 시민 사회와의 소통 강화다. 시민들이 AI 기술의 혜택과 위험을 올바로 이해하고, 법제화의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교육 및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법이 일방적으로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공감대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규범으로 기능하게 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AI 법제화는 미루면 미룰수록 기술과 사회 사이의 간극은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국회는 느려도 괜찮지만, 멈춰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이 AI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가 기술과 함께 진화하는 동반자 역할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