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공지능)는 이제 더 이상 ‘다가올 미래 기술’이 아니다. 생성형 AI는 이미 업무 자동화와 창작 영역을 뒤흔들고 있고, 자율주행, 얼굴 인식, 스마트시티 등은 현실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정부가 고민해야 할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는 인공지능을 국가 미래 성장 동력으로 규정하고 이를 전방위적으로 육성해 왔다. 2020년 ‘AI 국가전략’ 수립 이후, AI 반도체 개발, 융합 서비스 촉진, AI 인재 양성 등 다양한 정책이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AI 진흥’이라는 이름 아래, 기술 기업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기술이 인간 삶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수록, AI가 초래할 수 있는 문제도 함께 커진다. 대표적으로는 개인정보 침해, 알고리즘 편향, 설명 불가능한 판단, 일자리 대체 등이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AI 규제’라는 또 다른 정책 축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즉, 정부는 AI를 진흥해야 할 대상이자, 규제해야 할 대상으로 동시에 보고 있다. 이 글에서는 한국 정부가 ‘AI 진흥’과 ‘AI 규제’ 사이의 딜레마를 어떤 방식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풀기 위한 정책적 해법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정부의 AI 진흥 전략: 산업·인재·기술의 3각 편대
한국 정부는 AI 기술을 단순한 산업 기술이 아닌 국가 생존 전략으로 간주하고 있다. ‘디지털 뉴딜’ 정책안에 AI가 핵심 기술로 포함된 것도 이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주요 부처는 각자 AI 진흥을 위한 실질적 정책을 내놓고 있으며, 이에 따라 수천 개의 관련 기업이 창업되거나 투자유치를 진행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는 AI 반도체다. 정부는 시스템 반도체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PIM(PU와 메모리 통합)’ 기술에 집중적으 투자하고 있으며, AI 처리에 특화된 칩 개발을 위한 산학연 협력체계도 구축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인공지능 전문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교육 정책도 동시에 추진 중이다. KAIST, GIST, 고려대, UNIST 등 국내 주요 대학에 AI 대학원을 설치하고, 산업 맞춤형 인재 양성을 위한 민간-대학 협력 모델도 운영되고 있다. 2025년까지 10만 명의 AI 전문인력을 양성하겠다는 계획도 수립돼 있다.
이러한 정책은 AI 생태계를 전방위적으로 확장하는 ‘진흥형 드라이브’다. 하지만 이러한 진흥책이 사회적 안전망이나 윤리적 가이드 없이 추진될 경우, 기술은 오히려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 그래서 진흥과 함께 반드시 규제가 뒤따라야 하는 이유가 존재한다.
AI 규제의 필요성과 정부의 다층적 접근
AI 기술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 수 있지만, 동시에 인간의 권리를 위협할 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자동 채용 시스템에서 특정 억양, 외모, 표정 등을 바탕으로 부정확한 평가가 내려지거나, 금융 AI가 개인 신용 정보를 과도하게 활용해 신용등급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사례는 단순한 기술적 오류가 아니라 사회적 신뢰를 흔드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진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위험을 인식하고, 2021년 ‘국가 AI 윤리 기준’을 제정했다. 이 기준은 인간 중심성, 공정성, 투명성, 안전성, 책임성을 중심으로 하며,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기술 개발 및 서비스 설계 단계에 반영되어야 할 원칙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 외에도 정부는 AI 기술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법제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추진 중인 ‘AI 기본법’은 AI 사업자, 사용자, 개발자 각각의 권리와 책임을 정의하고 있으며, 특히 고위험 AI 기술에 대해서는 별도 관리 체계를 적용하려는 방안을 담고 있다.
EU의 AI 법처럼 ‘위험 기반 접근법’을 도입하여, 용도와 영향을 고려한 차등적 규제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게 한국 정부의 방침이다. 하지만 이 법은 아직 입법화되지 않았고, 민간과 학계의 의견 조율이 필요한 상황이다.
진흥과 규제 사이에서 산업이 겪는 현실적 혼란
정부가 AI 진흥과 규제를 동시에 추진하다 보니 산업 현장에서는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스타트업이나 중소 AI 기업은 규제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술을 개발하거나 출시해야 하므로, ‘무엇이 불법이고, 무엇이 안전한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AI 기술은 빠르게 상용화되고 있는데, 이를 관리할 법적 기준은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의료나 교육, 금융처럼 고위험 분야에 AI가 실험적으로 적용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인증제나 윤리 검증 체계는 아직 정비되지 않았다.
또한 일부 기업은 정부 가이드라인이 지나치게 모호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자율규제’라는 이름 아래 정책이 강제력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실제 현장에서는 윤리 기준을 지키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간에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
이처럼 정부의 정책이 명확한 로드맵을 갖지 못하면, 기업들은 혼란을 겪고 소비자는 불신을 품게 된다. 진흥과 규제가 명확히 정립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는 AI 산업 자체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
정부의 해법: 신뢰 기반 AI 전략과 자율 규제 모델
한국 정부는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신뢰 기반 AI’라는 중간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AI 기술의 진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책임과 윤리를 제도화하는 접근 방식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AI 자율 규제 가이드라인’이 있다. 이는 기업이 스스로 윤리 기준을 세우고 이를 평가하는 방식이며, 정부는 이를 강제하지 않고 ‘인증’이나 ‘제도적 혜택’을 통해 장려하고 있다.
또한 고위험 AI 기술에 대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AI 인증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이 인증은 AI 기술이 공정성과 안전성, 투명성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지를 검토해 마크를 부여하는 제도다. 마치 유럽의 CE 인증, 미국의 NIST 프레임워크처럼 기술의 품질과 윤리성을 동시에 검토하는 절차다.
이러한 모델은 자율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정부의 전략이다. 강한 규제로 혁신을 억제하지 않으면서, 사회적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균형 규제 시스템’으로 볼 수 있다.
기술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AI 정책의 진짜 목적
AI 정책의 본질은 기술 자체에 있지 않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기술이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사회적 신뢰와 공공 가치를 어떻게 지키는가이다.
한국 정부는 AI 진흥과 규제를 동시에 추진하면서도, 갈수록 사람 중심의 기술, 윤리 중심의 인공지능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법적 제약이 아니라, 기술 발전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핵심 기준이다.
향후 AI 기본법이 입법화되고, 인증제·윤리 가이드라인·기업 자율 규제 등 다양한 정책이 종합적으로 실행된다면, 한국은 기술 혁신과 사회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AI는 그 자체로 중립적인 기술이 아니다. 정부가 어떤 철학과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하느냐에 따라, 그 기술은 모두를 위한 도구가 될 수도 있고, 소수를 위한 특권이 될 수도 있다. 이 시점에서 정부의 선택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미래 사회의 구조를 좌우하는 결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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