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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노동법 충돌: 자율시스템이 노동자를 대체할 때

mynote7230 2025. 6. 27. 21:50

인공지능(AI)과 자율시스템은 기업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물류, 고객 서비스, 사무관리, 제조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인간의 개입 없이 업무를 수행하는 시스템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예전에는 사람이 입력한 작업을 단순히 자동화하던 로봇들이 이제는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수준에 이르렀다. 문제는 이러한 기술의 발전이 전통적인 노동구조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이미 콜센터, 무인 편의점, 자동 배송 로봇 등 다양한 형태의 AI 기반 자율시스템이 노동자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다. 이는 단지 기술 변화가 아니라 법과 제도의 문제, 노동자의 생존권과 직결된 사회적 충돌로 이어진다.

AI와 노동법 충돌, 자율시스템의 차지

 

그렇다면 자율 시스템이 인간 노동을 대체할 때, 우리는 노동법적으로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하는가? 그리고 정부는 이 변화 속에서 노동자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 AI 기술 발전이 실제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한국 사회가 이를 법적으로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AI에 의해 대체된 일자리의 현실

실제로 AI 기반 자율시스템이 노동자를 대체하고 있는 현장은 이미 우리 주변에 있다. 대표적인 예는 콜센터 산업이다. 2022년 이후 많은 기업이 AI 상담 챗봇을 도입하면서, 단순 반복적인 고객 문의 응대는 대부분 자동화되었다. 이에 따라 기존 상담원 중 일부는 구조조정 대상이 되었고, 특히 비정규직과 파견직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또한 물류 산업에서도 자율주행 배송 로봇이 실제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일부 유통기업은 서울 시내와 경기 지역 일부에 라스트마일 배송 로봇을 투입해, 택배 기사나 배달원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대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파트타임 배달원들의 계약이 종료되거나 근무 시간이 대폭 축소되었다.

이 외에도 무인 계산대, 자동 주차 시스템, AI 회계 처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율 시스템은 인간 노동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기술 전환이 법적 기준이나 보상 시스템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노동법은 사람이 고용되어 일정한 대가를 받고 일하는 구조를 전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AI가 일자리를 ‘빼앗는 행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응 수단이 없다.

노동법과 자율시스템의 충돌 지점

기존 노동법 체계는 고용계약의 존재, 사용자와 근로자의 관계, 근로 시간과 임금 등의 요소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자율 시스템은 고용계약 없이도 업무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법이 규정하는 ‘노동’의 개념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무인화된 AI 주방 시스템이 도입된 외식업체에서 기존 조리사들이 해고되었다면, 사용자는 “기술적 변화에 따른 인력 재배치”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해고된 노동자 입장에서는 이는 명백한 일자리 박탈이자 생계 침해다. 이 경우 어디까지를 정당한 기술 적용으로 볼 것이며, 어디서부터는 노동권 침해로 간주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부재하다.

더 나아가 자율 시스템은 ‘지속적인 학습’을 통해 점점 더 인간 노동을 흉내 내고, 대체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노동법은 시스템이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 어떤 권리나 책임도 부여하지 않는다. 즉, 시스템은 사람을 대체하면서도, 아무런 사회적 책임도 지지 않는 무형의 사용자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근로기준법, 해고 관련 판례, 단체협약 등 기존 노동 규범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결국 법은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에 대응하기 위해 ‘노동’의 개념을 다시 정의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

정부와 국회의 대응: 늦은 법제화, 불충분한 보호

한국 정부는 이러한 기술과 노동 간의 충돌을 인식하고 있으나, 아직 명확한 법적 기준은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국회에서는 2023년부터 ‘디지털 노동 전환 대응법’, ‘AI 고용영향평가제’, ‘일자리 보호를 위한 자동화 통제법’ 등 여러 법안이 발의되었지만, 대부분은 계류 중이거나 논의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

정부는 디지털 전환에 따른 노동시장 변화 대응을 위해 ‘한국형 AI 윤리 기준’에 노동권 보호 항목을 일부 포함 했지만, 이는 선언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 자율 시스템이 도입될 경우 사용자는 이에 대한 사전 고지나 대체 인력 교육을 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었으나, 강제력은 부족하다.

반면 유럽연합(EU)은 ‘AI법(AI Act)’ 내에 고위험 AI 시스템을 규정하고, 노동 대체가 발생할 경우 영향 평가와 윤리 검토를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 역시 NIST(미국 국립표준 기술연구소) 기준을 통해, 자동화 기술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정기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국도 더 이상 법제화를 미룰 수 없다. 자율 시스템이 일자리를 대체하는 현상은 단기간에 멈추지 않으며, 그 속도는 오히려 점점 빨라지고 있다. 노동자 보호는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현실에 대응하는 일이다.

대안은 있는가? 제도와 사회적 합의가 답이다

AI 기술을 무작정 막을 수는 없다. 기술은 진보하고, 산업은 변화하며, 기업은 경쟁력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사람의 삶과 권리가 침해된다면, 그 기술은 사회적으로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첫째, 정부는 노동 영향 평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이는 자율 시스템이 도입되는 현장마다 해당 기술이 몇 명의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지, 기존 요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사전에 분석하고 공시하는 방식이다.

둘째, 대체 노동자에 대한 직업 전환 교육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단순 해고가 아닌, 재교육을 통한 다른 역할로 이동이 가능하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노동법의 재정의가 필요하다. 사람이 아닌 시스템이 노동을 수행할 경우에도, 일정 수준의 사회 기여와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원칙을 제도화해야 한다. 예컨대 자율 시스템이 대체한 업무량에 대해 기업이 고용 기금에 일정액을 납부하거나, 노동권 보장 기금을 조성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과 인간의 균형이다. 우리는 효율성과 생산성만이 아닌, 존엄성과 공공성도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기술을 수용해야 한다.

결론: 자율 시스템 시대, 노동의 개념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AI와 자율 시스템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노동 구조, 고용 계약, 사회적 책임 체계 전체를 다시 점검하게 만드는 거대한 전환점이다.

이제 우리는 “기술이 가능한가?”보다 “그 기술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중심에 두고 질문해야 한다. 노동법은 더 이상 과거의 전통적인 고용관계를 중심으로 설계되어서는 안 된다.

자율 시스템이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에는, 노동을 ‘사람만의 행위’로 한정 짓지 않는 새로운 법적 정의와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입법 과제를 넘어서, 사회 전체의 가치를 재정립하는 일이다.

AI는 결국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 기술이 아무리 효율적이라 해도, 사람의 삶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그 사회는 실패한 것이다. 우리는 이제 기술의 편이 아니라, 사람의 편에서 기술을 설계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