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추천 알고리즘의 위험성과 국내 법적 가이드라인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콘텐츠를 인공지능(AI) 기반의 추천 시스템을 통해 접하고 있다. 유튜브 영상, SNS 피드, 뉴스 기사, 쇼핑 상품까지, 거의 모든 온라인 경험은 알고리즘이 ‘우리를 대신해’ 선택한 결과물이다. 이처럼 추천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관심사를 분석하고, 맞춤형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그 이면에는 심각한 정보 편향과 여론 왜곡, 사회적 분열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알고리즘이 단순히 ‘추천’하는 수준을 넘어, 사용자의 감정과 행동을 유도하고 조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는 지적도 나온다. AI는 클릭률, 체류 시간, 선호 패턴을 분석해 사용자가 원할 법한 것만 반복적으로 노출고, 결국 특정 정치 성향, 이념, 상품만을 소비하도록 만든다. 그 결과 사용자는 다양한 관점을 잃고, 점점 좁아진 정보 세계에 갇히게 된다.
이런 기술은 더 이상 중립적이지 않다. 사용자의 관심을 얻기 위한 경쟁에서 AI 알고리즘은 점점 더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콘텐츠’를 선호하게 되며, 이는 실제 사회적 갈등과 혐오의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글에서는 AI 추천 알고리즘이 만들어내는 위험성과,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한국 사회와 정부가 어떤 법적·제도적 대응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AI 추천 알고리즘의 구조와 위험성
AI 추천 알고리즘은 기본적으로 사용자의 과거 행동 데이터를 수집해, 그에 유사한 콘텐츠를 자동으로 노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 특정 주제의 영상이나 게시물을 자주 클릭한 사용자는 이후에도 유사한 콘텐츠만 추천받게 되며, 이는 사용자의 ‘콘텐츠 소비 편향’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문제는 이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흥미에만 집중한다는 점이다. 자극적인 정치 콘텐츠, 선정적인 영상, 극단적인 발언 등이 사용자의 체류 시간을 늘리는 데 효과적이라면, 알고리즘은 그것을 계속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다양한 시각을 접하기보다, 자신이 보고 싶은 정보만 소비하며, 이는 확증 편향, 정치적 양극화, 혐오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대선 당시 유튜브 알고리즘이 특정 음모론 콘텐츠를 대거 추천해 여론을 왜곡시켰다는 것이다. 또, 틱톡은 10대 사용자에게 지나치게 외모나 체형에 집착하는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추천해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AI 추천 시스템은 콘텐츠 생산자가 어떤 가치로 정보를 만들었는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오직 ‘반응이 좋은 콘텐츠’를 중심으로 사용자에게 노출시킨다. 그 결과 잘못된 정보, 편향된 시각, 비윤리적인 콘텐츠조차 추천 대상이 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된다.
추천 알고리즘이 만드는 사회적 문제들
추천 알고리즘은 기술적 편의 이상의 사회적 영향을 만들어낸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정보의 불균형과 사회 분열이다. 사용자들은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정보만을 접하며, 결과적으로 정보의 다양성과 중립성은 사라진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건전한 공론장이 무너지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또한 추천 시스템은 사용자의 연령, 지역, 성별, 검색 이력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기반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개인정보 보호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사용자가 자신에 대한 정보가 어떤 방식으로 수집·분석되고 있는지 모른 채 알고리즘에 의해 판단 당한다면, 이는 디지털 감시 사회의 서막이 될 수 있다.
특히 아동·청소년 사용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더욱 심각하다. 유튜브, 틱톡 등의 플랫폼에서는 추천 알고리즘이 나이에 맞지 않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노출시켜 조기 성인화, 소비 중독, 정신 건강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 그러나 부모나 보호자는 아이가 어떤 알고리즘을 통해 무엇을 보고 있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는 단지 플랫폼의 설계 문제가 아니다. 정부와 사회가 ‘알고리즘 권력’에 대한 견제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는 한, 개인은 점점 더 기술에 종속되고, 사회는 점점 더 감정적으로 분열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국내의 법적 대응과 AI 가이드라인 현황
한국 정부도 이러한 위험성을 인식하고 여러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2021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가 AI 윤리 기준’을 발표해, AI 기술이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를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투명성, 책임성, 공정성, 설명 가능성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 기준은 불법적 선언문 수준으로, 기업이나 플랫폼에 직접적인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다. 즉, 알고리즘이 편향적 판단을 하거나, 부적절한 콘텐츠를 추천하더라도 법적으로 처벌하거나 시정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하다.
최근 국회에서는 ‘AI 기본법’, ‘플랫폼 알고리즘 책임법’, ‘디지털서비스법’ 등이 발의되고 있으나, 대부분 계류 중이거나 민간 반발로 지연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알고리즘을 ‘영업비밀’로 간주해 외부 감시나 설명 요구를 회피하고 있으며, 플랫폼 운영의 투명성 확보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이에 비해 유럽연합은 2023년 EU AI Act를 통해 고위험 알고리즘 시스템에 대해 설명 책임, 감사 의무, 사용자 통보 의무 등을 명문화하고 있으며, 미국도 FTC(연방거래위원회) 차원에서 알고리즘의 조작성과 사회적 영향에 대한 조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한국은 이제야 관련 논의를 시작한 단계로, 현실과 법 제도의 간극이 매우 크다.
신뢰받는 추천 알고리즘을 위한 제도화가 시급하다
AI 추천 알고리즘은 정보를 단순히 보여주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정보를 누구에게, 언제, 얼마나 반복적으로 노출할지를 결정하는 권력 시스템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용자는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AI가 정해준 콘텐츠 안에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고 있다.
따라서 AI 추천 시스템은 반드시 공공성과 책임성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는 다음과 같은 제도적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
- 알고리즘 설명 책임 제도 도입 – 사용자가 추천 결과에 대해 ‘왜’ 그런 정보가 제공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플랫폼에 설명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
- 외부 알고리즘 감사 시스템 구축 – 제3의 공공기관이 기업의 추천 알고리즘을 분석·검토할 수 있어야 하며, 편향과 조작 가능성을 점검해야 한다.
- 아동·청소년 보호 필터 의무화 – 추천 콘텐츠의 연령 적합성 기준을 강화하고, 필터링 시스템의 적용을 법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
- 사용자 권리 강화 – 사용자가 원하지 않는 알고리즘 기반 추천을 거부하거나, 수동 설정 기능을 선택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기술은 언제나 어떤 목적을 위한 도구이고, 그 목적이 사람을 위하지 않는다면, 기술은 사회를 해치는 흉기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추천 알고리즘을 감시하고, 규율하고, 사회적 신뢰의 범위 안에 두어야 한다. 그럴 때만 AI는 우리의 삶을 돕는 도구가 될 수 있다.